글 모음

별별 사람이 모인 서울의 봄에 별똥별처럼 혼자 툭- 떨어졌다 간장 밥만 먹고 살 수는 없으니 밥값을 벌러 별별 일을 시작했다 별별 사람이 모인 서울의 낮에는 건물이 빽빽해 볕이 들지 않았다 큼직하게 내놓은 창문에 드는 건 햇빛보다 별의별 사정과 빚이었다 별별 사람이 모인 서울의 밤에는 빚들이 가득해 별도 오지 못했다 별 대신 있는 건 가로등 빛이었고 나는 ...

“어른 하나가 몸에 있어.” 어릴 적 친척들이 조용히 부모님에게 하던 말을 기억한다. 사탕 같은 것을 입에 물고 걸어 다니던 나를 보고 주위 어른들은 이상하게도 ‘애어른’이라는 말을 자주 했었다. 나는 분명 그냥 애였는데. 시간이 지나서 그 말은 ‘그 나이의 아이들과 다르다.’가 됐고, 나는 그걸 칭찬이라 여겼다. 또래와 다른 특별함이 있는 게 좋았으니까....

대한민국에 좀비 떼가 습격했다. '부산행'에서 시작한 습격은 다양한 경로로 퍼졌다. 뉴스와 신문은 연일 좀비의 존재를 보도했고 주위 사람들은 그 좀비 바이러스를 확인하러 극장에 갔다. 겁이 많은 사람들은 집에서 좀비의 존재를 실감했다. 나는 그 많은 좀비들 중에 하나도 보지 않았다. 좀비가 나오는 재난 영화를 왜 보는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왜 좀비...

“나 너무 힘들어.”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던 나는 반짝거리며 빛나는 창을 바라보다가 이내 침대로 자리를 옮겼다. 언제 해가 진 건지 힐긋 본 맞은편 커튼 사이의 창문에는 어둠을 배경으로 침대 위의 나만 비치고 있었다. 무슨 일인데. 나는 그저 한마디 했을 뿐인데 화면 너머로 그녀의 울음이 들렸다. 울음 속에 드문드문 새로 사귄 남자친구 얘기가 섞여 있었...

어느 날 네가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졌다. 나는 널 본 순간부터 네게 나의 모든 걸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네가 빛나지 않는다 하여 네 주위에서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머무르는 나를 만류했지만 나는 빛나지 않는 너라서 오히려 너를 사랑했다. 이상하게도 난 네게 내 모든 걸 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 감정은 어쩌면 동정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눈물이 많다. 이렇게 잘 우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건 아니였는데 그냥 살다 보니까 이렇게 됐다. 별거 아닌 일에도 되게 기뻐하고 웃을 수 있는 게 난데 별거 아닌 일에 울고 울다가 지칠 수 있는 것도 나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초등학교 때 그 일이라고 짐작은 하지만 정확히는 모른다. 다른 사람의 일에 관심 너무 많이 가지는 거 안 좋다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내 꿈에는 왜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안 오시나 했었다. 그 정도로 너무 보고 싶었고 그리웠다. 그런데 8월 29일 아침에 나는 그 이유를 알았다. 할아버지가 꿈에 나오셨는데 그 꿈을 꾸고 나니까 눈물이 그냥 쏟아졌다. 너무 오랜만에 많이 울어서 그런지 속이 울렁거렸다. 나를 울게 하기 싫어서 안 오셨던 것 같다. 꿈속에서 나는 할아...

빈집

빈집이 있었습니다. 나는 검은 사람들이 줄줄히 그 곳에서 나오던 날 울고 있던 한 남자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 남자에게 그 곳에 있던 어느 누구도 그 눈물의 의미를 묻지 않았습니다. 위로도 건네지 않았습니다. 나도 그랬습니다. 그 곳은 그냥 조용했고, 그냥 조용했습니다. 긴 침묵, 그의 손에 들려있던 한 액자. 그것 말고는 나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습...

사계절이 희미해져간다 계절마다 있던 나의 추억들이 사라져간다 절실하게 그 추억들이 보고 싶다 나의 계절은 형태도 없는 희미한 그리움만 남긴 채 떠나가고 있다 또 다시 다른 계절이 오고 있지만 나의 계절은 이미 떠나간 뒤다 나의 계절은 돌아오지 않는다 나의 지난 사계절은 어땠었나 힘껏 떠올려보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그 때 행복했었는데 그런 생각만...

소음이 가득한 일상 속에 지쳤다. 음소거가 필요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바람이 나를 스쳐가는 소리만 남기고 다 사라져버리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소음일지도.

공통점 하나 없는 사람끼리 만나 통화를 정말 자주 했더니 점 같은 정말 사소한 공통된 것들이 보였다. 그리고 비로소 너와 나이던 세계는 하나가 됐다.

길, 네게 닿을 길을 찾았다 생각했다. 을이 될 지라도 이제는 해볼만 하다 생각했다. 잃어버렸다, 그 길을. 다만 네 흔적은 지워지지 않아 미련만 남았다.